고양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2013.06.17 - PM 22:53:08

털이 하얀 고양이가 있었다
분홍색 코가 촉촉한 작은 고양이 한마리.
어디서 왔는지, 무슨종류의 고양이이며,
태어난지 얼마나 되었는지 도무지 감잡을수 없는 새끼고양이..

비오는 어느날 어느 청년이 그 귀엽고도 주인없는 불쌍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청년이 사는 집은 10평남짓한 조그만 아파트였다
제이콥씨 가게에서 산 삐꺽거리는 침대와
변변찮은 오디오, 냉동은 되지 않는 조그만 냉장고와
의자없는 둥근 티테이블이 살림의 전부였다

그나마 집에 가구의 역할을 해내는것은
(가구의 역할중 장식에 해당하는 부분에 있어서)
한가운데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낡은 피아노 한대.

허나 고양이 한마리가 낀다고 해도
부족할만한 여건은 아니었다.

청년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둘의 관계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그 고양이가 본디 자기가 있던곳으로 훌쩍 떠나가버린다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죽어버리게 되었을때
청년은 고양이의 이름을 그리며
겉잡을수 없는 그리움의 수렁에 빠질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어떤 한 고양이가 있었지, 하고 기억하는편이 훨씬 나았다
이름이란 쉽사리 잊혀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채
청년과 고양이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고양이는 청년의 피아노위에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그 청년의 볼품없는 아파트에 좋은 점을 하나 꼽자면  
벽전체의 ⅔가량을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는것.

그 흰고양이는
창문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에 배를 깔고 피아노위에 누워
광합성하기를 즐겨했다

혼자사는것에 지독히도 익숙해져 있던 청년은
고양이를 사육하는 다른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고양이를 상대로 단한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둘사이엔 무언중의 의무감이라는것이 있었다
청년에겐 고양이를 적어도 굶기지않고 돌보아줄 책임이,
고양이에겐 청년이 그 좁은 아파트에 혼자남겨지지 않게할 의무가..

가끔씩 고양이가 그릇안의 시리얼을 비울때즈음,
청년은 낡은 피아노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곤 했다

'미'로 시작한 그 건반 두드림은 점차
비틀즈 음악으로, 때론 이름모를 곡들의 연주로..
청년이 피아노앞에 앉아 연주에 몰두할때쯤
고양이는 조심스레 피아노위에 올라가
그의 갈색눈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오후 네시쯤이 되면 그는 어김없이 어디론가로 훌쩍 나간다.
텅빈 집에 남겨진 어린 고양이는 창문앞에 앉아
그가 돌아올때까지 꼼짝앉고 서있다
그가 나가며 그릇에 가득채워준 시리얼도,
비릿내를 모락모락 풍기는 방금딴 참치캔도
고양이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행여나 그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불안감에 고양이는 방안이 온통 껌껌해질때까지도
창문밖을 내다보며 꼼짝앉고 서있다

그렇게 하루종일 기다린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면
고양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당신이 돌아오는것 따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듯 참치캔앞에 달려가
그제서야 먼지가 가라앉은 참치를
할짝할짝 핥는다

온종일 집에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린 자신을 동정해,
빈집에 고양이를 두는것은 안되겠다 싶어서
혹, 다른집에 주어버리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고양이는 시치미를 뚝떼고 참치를 뚝딱 해치우곤
하품까지하며 너스레를 떠는것이다.

이것이 청년과 고양이의 하루 일과이다.

그렇게 몇번의 계절이 바뀌고,
고양이는 이제 더이상 자그마한 체구의 새끼고양이가 아니었다

청년도 그것을 깨닫고
두배의 시리얼과 몸집이 커져버린 고양이가 잠을 잘수있는 커다란 바구니를 사왔다

그때까지도 청년은 그 고양이가 암고양이인지,
숫고양이인지, 그 고양이의 종류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다

고양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에겐 달리 가족은 없는지, 애인은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모든것은 제멋대로 추측하고 상상할 뿐이었다

그러다 고양이는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위에 앉아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가
자신이 암고양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느끼게 된것이다.

그가 건반을 하나씩 누를때마다
가슴이 터질듯 밀려오는 두근거림이 단지
피아노 건반에서 울려나오는 진동때문이라 생각했던 고양이는
그것이 어떠한 감정에서 비롯된 느낌이란것을 깨닫게 되었다

둘사이에 아무런 대화도,
이름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양이는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것이다.

그해 여름부터 청년이 집을 나서는 시간이
오후 네시에서 오전으로 바뀌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자세히 알수없으나
그가 항상 집을 나설때 들고가는 악보들과
언젠가 티테이블에 놓여진 어느 레스토랑의 성냥을 봐서는
아무래도 새로운 직장을 얻은거 같았다

덕분에 고양이는 텅빈 집에 혼자 남겨져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그가 부쩍 이상해짐을 느낀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날도 생기고,
거울을 보는 횟수도 늘기도
유난히 외모에 신경쓰기도
평생 쓰지도 않은 향수를 뿌리기도..
혼자 싱글벙글 웃는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다
"나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어. 우린 곧 결혼할꺼야"
그것이 고양이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그리고 한번쯤은 말을 걸어주길 바랬던
그의 목소리로부터 들은 첫 말이었다

고양이는 대다수의 고양이들이 그러듯,
"나는 한낯 동물일뿐, 당신의 말은 알아들을수 없어요"란 태세로
시리얼에 담긴 그릇을 향해 휙 등을돌려 걸어간다

그렇게 맛이없는 시리얼은 태어나 처음이라 말할수 있을정도로
고양이는 맹목적으로 그 그릇을 다 비우고서야
그를 마주대할수 있었다

고양이가 삼킨것은 시리얼도, 우유도 아닌
울음이었다

애시당초 사람에게 사랑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고
되뇌일때즈음,
집안가득히 울리는 초인종소리.

이 집에 저런 초인종이 달려있었다는것 조차도 모를정도로
그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문밖에 제일먼저 나간것은 고양이가 아닌 그였다
마치 누가 오기로 미리 약속이라도 되있듯
환한 얼굴로 청년은 거울을 슥 한번 다시 보곤 현관으로 나갔다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들리고 집안으로 들어온건
청년의 새로생긴 애인이었다.

진한 화장에 코를 찌르는 향수냄새가
일순간 방전체를 잠식시키고 말았다
그 고약한 냄새에 질식하기 직전
정신을 차리고 그의 그녀를 쳐다본 고양이는
놀라움을 금치 않을수 없었다.

오래전..
비오던날 밤에
자기를 길밖으로 내몰았던 그 여자.
몇해가 지나고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고양이는 그 여자의 목소리와 천박한 화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청년은 언제나 그랬다는듯 한없이 친절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의 그녀는
고양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체구가 몹시 커져버린 이 고양이가
지난날 자기가 버린 새끼고양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듯 했다

고양이는 그날을 떠올려본다

그녀에겐 늙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중절모를 쓰고 다니던
입냄새가 몹시 심한 사내로
어느날 그녀가 데려온 그녀의 애인이었다

그는 어린아이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비둘기의 퍼덕임보다도 싫어했다

새끼고양이가 냐옹냐옹 울어대자
그는 소리를 버럭지르며 고양이를 창문밖으로 던져버렸다
그 사내의 돈을 사랑했던 그녀는,
고양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고양이는 버려지고 만것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청년에게 이런일들을 설명할수가 없었다.
한낯 동물따위가 인간세계에 침범할수 있는 영역은
사육당하는 것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목구멍 깊은곳에서 무언가 뜨거운것이 올라온다.
울컥-하고 올라온 그것은 고양이의 눈물이었다

자신도 여자의 몸에서 풍기는 향수냄새의 고약함을 느꼈던지
그는 창문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어
그녀에게 소리쳤다.

"봄이구나. 올핸 정말 행복한 봄이 될꺼야
당신은 최고로 아름다운 신부가 될꺼고"

그가 피아노앞에 앉았다

처음으로 고양이가 아닌
그녀를 위해
그가 피아노를 친다.

그동안 몹시 연습해온 곡을..

활짝 열려진 창문으로
고양이가 소리없이 뛰어든다.
19층의 고층 아파트에선
피아노소리만이 들릴뿐

아무도 어떤 이름조차 없는 한 고양이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으리라곤 모를것이다

또 그 고양이가
다음생애엔 인간이 되기를 기도하며 뛰어내렸을꺼라곤
아무도 모를일이다

다음엔 정말 제대로된 사랑을 하고 싶다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바라고, 얻을수 있다는 희망으로-.


-2004년 4월 2일. 윤주희.
어른들을 위한 동화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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